퇴근하고 소파에 무너지듯 앉았을 때, 아무 예고도 없이 가슴 위로 훌쩍 뛰어오르는 고양이를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매일 저녁 그 순간을 맞이합니다. 처음엔 그저 귀엽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이 행동이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가 먼저 알아채는 것들 — 후각 감지
유독 힘든 날이 있었습니다. 야근이 이어지고 몸도 찌뿌둥하던 어느 화요일 저녁, 침대에 누운 지 채 5분도 안 됐을 때 먼지가 제 가슴 위로 올라왔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올라오긴 하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습니다. 제가 손을 뻗기도 전에 먼저 다가와 얼굴을 제 턱에 비볐습니다. 그 순간 '이 아이가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고양이는 약 2억 개의 후각 수용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약 5만 개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이 압도적인 후각 능력 덕분에 고양이는 집사의 몸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 농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 피부를 통해 달라지는 화학 신호들, 고양이는 그것을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읽어냅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요양원에서 살았던 오스카(Oscar)라는 고양이는 환자가 임종하기 몇 시간 전 그 사람의 침대로 올라가 곁을 지키는 행동을 반복했고, 의료진은 이를 체온 변화와 신체 화학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으로 해석했습니다(출처: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먼지가 그날 유독 먼저 다가와 턱에 얼굴을 비볐던 것도, 제 몸에서 달라진 신호를 감지한 반응이었을 겁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행동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습니다. 피곤하거나 감기 기운이 있는 날, 먼지는 유독 더 오래 가슴 위에 머물렀습니다. 반면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잠깐 올라왔다가 금세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몇 달을 반복해서 보고 나서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당신을 선택하는 방식 — 영역 표시와 페로몬
먼지와 뭉치를 함께 키우면서 목격한 장면이 있습니다. 먼지가 제 가슴 위에서 한창 꾹꾹이를 하고 있을 때, 뭉치가 슬그머니 다가와 제 무릎 위로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두 아이가 동시에 제 몸 위를 차지하는 광경이 귀엽기도 했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 나서는 웃음이 멈췄습니다.
고양이의 발바닥에는 페로몬을 분비하는 지간선(interdigital glands)이라는 향샘이 있습니다. 꾹꾹이를 하며 발을 리드미컬하게 누를 때마다 페로몬이 집사의 몸에 묻어나게 됩니다. 고양이의 관점에서 이 행동은 "이 사람은 내 것"이라는 신호를 남기는 과정입니다. 제가 먼지에게 꾹꾹이를 허락하는 동안 뭉치가 따라 올라온 건, 질투라기보다 자신도 같은 표시를 남기려는 본능적인 반응이었던 것입니다.
고양이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다묘 가정에서 집사를 두고 벌어지는 이 페로몬 표시 행동은 영역 경쟁의 일환으로 해석됩니다(출처: American Association of Feline Practitioners). 집사 입장에서는 귀여운 순간이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꽤 진지한 신호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많은 집사들이 무심코 저지르는 실수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자주 했던 행동인데, 꾹꾹이 중에 고양이를 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다리가 저려서, 혹은 뾰족한 발톱이 신경 쓰여서 그랬는데, 알고 보면 고양이 입장에서는 자신이 전달하려던 메시지를 집사가 지워버리는 경험이 됩니다. 반복되면 거절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알고 난 뒤로는 최대한 자리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꾹꾹이를 통해 집사를 '내 것'으로 표시하는 고양이의 행동 방식을 이해하고 나면, 다묘 가정에서 놓치기 쉬운 신호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먼지가 제 가슴 위에 올라오자마자 뭉치도 무릎으로 따라붙는 장면이 반복됐는데, 이게 페로몬 경쟁이었다는 걸 알고 나서는 그 순서와 위치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꾹꾹이 중 발을 강하게 누를수록, 먼저 올라올수록 집사를 더 확실히 선점하려는 신로였던 것입니다.
신뢰를 쌓는 몇 초 — 꾹꾹이와 옥시토신
뭉치가 처음 입양 왔을 때 이야기를 잠깐 꺼내야겠습니다. 다리가 짧은 먼치킨 특성상 한 번에 가슴까지 뛰어오르기가 쉽지 않았고, 처음 몇 달간은 제 무릎 주변에서 망설이다 그냥 옆에 앉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TV를 보는데, 뭉치가 조심조심 무릎 위로 올라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굳어 있었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쓰다듬으려다 멈췄습니다. 뭔가 긴장한 기색이 느껴져서였습니다.
가만히 있었습니다. 숨도 최대한 고르게 쉬면서 움직임을 줄였습니다. 그렇게 한 10분쯤 지났을까요, 뭉치의 몸에서 천천히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앞발을 접더니 이내 식빵을 굽기 시작했고, 조심스럽게 꾹꾹이를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이 아이가 저를 믿기로 결정했구나 싶었습니다.
성묘가 꾹꾹이를 할 때 뇌에서는 도파민과 옥시토신이 동시에 분비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 조합은 어미 고양이와 새끼가 처음 만날 때, 혹은 인간이 사랑하는 존재를 안을 때 나타나는 것과 같은 신경화학적 반응입니다. 야생 고양이는 성체가 되면 이 행동을 멈추지만, 집고양이는 성묘가 되어서도 꾹꾹이를 유지합니다. 인간이 그들의 안전 지도 안에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뭉치처럼 조심스럽게 올라오는 고양이일수록 집사의 반응 하나하나가 신뢰 형성에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그 순간 핸드폰을 집거나 자세를 바꾸는 작은 움직임조차 고양이에게는 큰 신호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제가 그날 가만히 있기로 한 선택이, 뭉치와의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린 분기점이 되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지와 뭉치를 키우면서 분명히 확인한 사실이 있습니다. 고양이가 몸 위로 올라오는 그 몇 초, 집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유대의 깊이를 실제로 바꿉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신뢰의 신호가 됩니다.
고양이의 이 행동은 단순히 따뜻함을 찾거나 애정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집사와의 유대를 확인하고 조율하는 복잡한 의사소통 방식입니다. 먼지가 가슴 위에서 골골송을 부를 때, 뭉치가 무릎 위에서 식빵을 구울 때, 저는 이제 그 무게가 단순한 고양이의 무게가 아니라는 걸 압니다. 다음에 고양이가 올라온다면 잠깐 멈추고, 아이가 보내는 신호가 무엇인지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가만히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